특허 침해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권리 구제, 즉 합리적이고 충분한 손해배상액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한국 특허법 제128조는 손해배상액 산정을 위한 다양한 법적 틀을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2019년 및 2024년 개정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강화되면서 그 중요성과 복잡성은 더욱 증대되었습니다.
본 칼럼은 법률 전문가를 대상으로, 특허법 제128조에 규정된 각 손해액 산정 방식의 법리적 근거, 실무상 쟁점, 판례 동향, 그리고 전략적 활용 방안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특히 강화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적용 기준과 시사점을 집중 조명하고자 합니다.
특허권자 이익 상실분 기준: 일실이익 산정 (제128조 제2항, 제3항)
1. 기본 법리 및 산정 공식
특허법 제128조 제2항은 특허권자가 침해 행위가 없었더라면 얻을 수 있었을 이익, 즉 일실이익(Lost Profits)을 손해액으로 추산하는 제1의 방식을 제시합니다. 그 공식은 “침해품 판매수량 × 특허권자 단위당 이익액”입니다.
2. 핵심 변수 분석 및 실무상 쟁점
- 침해품 판매수량 (Q침해): 원칙적으로 침해자가 판매한 총 수량이 기준이 되나, 후술할 생산능력 및 시장 요인에 의해 제한됩니다. 침해자의 판매량 입증 책임은 기본적으로 특허권자에게 있으나, 문서제출명령 등 증거개시 절차(특허법 제132조)를 통해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특허권자 단위당 이익액 (π특허권자): 판례는 일관되게 ‘한계이익(Marginal Profit)’ 또는 ‘공헌이익(Contribution Margin)’ 개념을 적용합니다. 즉, 매출액에서 해당 제품 생산·판매에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변동비(재료비, 직접노무비, 판매수수료 등)만을 공제하며, 고정비(시설 감가상각비, 일반관리비, 고정 인건비 등)는 공제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이는 침해로 인해 추가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까지 공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에 근거합니다.
- 실무 쟁점: 변동비와 고정비의 구분이 모호한 항목(준변동비 등)의 처리, 복수 제품 생산 시 공통비용 배분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회계 전문가의 감정이나 분석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3. 손해액 산정의 제한 요소
- 생산능력에 따른 제한 (제128조 제2항 단서): 손해액은 특허권자의 생산 가능 수량에서 실제 판매 수량을 뺀 잔여 생산 여력(Q생산가능 - Q실제판매)을 상한으로 합니다.
- 실무 쟁점: ‘생산능력’의 기준(이론적 최대치 vs. 현실적 가동률), 외주 생산 가능성 포함 여부, 생산능력 증설 계획의 인정 여부 등이 다투어질 수 있습니다. 특허권자는 생산 설비, 인력, 과거 실적 등을 통해 구체적인 생산능력을 입증해야 합니다.
- 침해 외 시장 요인 공제 (제128조 제3항): 침해 행위 외의 사유(경쟁 제품의 존재, 시장 수요 부족, 특허권자의 마케팅 능력 부족 등)로 인해 특허권자가 판매할 수 없었을 것으로 인정되는 부분은 손해액에서 공제되어야 합니다.
- 실무 쟁점: 시장 내 경쟁 상황, 각 제품의 대체 가능성, 가격 경쟁력, 브랜드 인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제 비율(시장 점유율 분석 등 활용)을 정하게 됩니다. 침해자는 비침해 대체품의 존재 및 시장 영향력을 적극 입증하여 공제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는 손해와 침해 행위 간의 인과관계 문제와 직결됩니다. 미국 판례법상의 Panduit 4요소 (수요 존재, 비침해 대체품 부재, 생산/마케팅 능력, 이익 규모)가 참고될 수 있습니다.
4. 종합 산정식 및 전략적 고려
최종 일실이익 손해액은 다음과 같이 정형화될 수 있습니다:
손해액(일실이익) = Min{Q침해, (Q생산가능 - Q실제판매)} × π특허권자 × (1 - 시장 요인 공제율)
특허권자는 높은 한계이익률과 충분한 생산능력, 그리고 시장 내 강력한 지배력(낮은 공제율)을 입증하여 손해액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침해자 이익 기준: 이익액 추정 (제128조 제4항)
1. 기본 법리 및 추정의 효과
특허법 제128조 제4항은 침해자가 침해 행위로 얻은 이익액을 특허권자의 손해액으로 '추정'합니다. 이는 특허권자의 손해 입증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규정입니다.
2. 핵심 변수 분석 및 실무상 쟁점
- 침해자가 얻은 이익액: 침해품 총매출액에서 침해품 생산·판매에 직접 관련된 비용을 공제한 금액입니다. 판례는 여기서 공제될 비용 역시 변동비 위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나(대법원 2006다17609 판결 등 참조), 일실이익 산정 시의 특허권자 비용보다는 다소 넓게 인정될 여지도 있습니다.
- 실무 쟁점: 침해자가 복수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 침해품에 대한 정확한 매출 및 비용 데이터 분리, 공통 경비의 합리적 배분 기준(매출액 비율, 생산량 비율 등) 설정이 핵심 쟁점이 됩니다. 2019년 개정된 특허법 제132조(자료제출명령)는 침해자의 회계 자료 확보에 실질적인 도움을 줍니다. 불응 시 특허권자의 주장이 진실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제132조 제6항)은 강력한 압박 수단입니다.
- 추정의 번복 (제128조 제4항 단서): 침해자는 자신의 이익 중 특허 기술과 무관한 요소(자체 기술력, 디자인, 브랜드 가치, 마케팅 노력 등)에 기인한 부분이 있음을 입증하여 기여도(Apportionment)에 따른 감액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 실무 쟁점: 기여도 입증은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침해자는 구체적인 증거(자체 R&D 투자 내역, 마케팅 비용 지출 내역, 브랜드 가치 평가 자료, 비침해 요소의 기술적/상업적 중요성 분석 등)를 통해 특허 기술의 기여분이 제한적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합니다. 법원은 양측의 주장을 종합하여 합리적인 기여율을 판단하게 됩니다.
3. 전략적 고려
침해자 이익액 방식은 특허권자의 생산능력이 낮거나 한계이익이 적은 경우, 또는 침해자의 이익률이 매우 높은 경우에 특히 유용합니다. 특허권자는 자료제출명령을 적극 활용하여 침해자의 매출 및 비용 구조를 파악하고, 침해자의 기여도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가상 실시료 기준: 합리적 로열티 산정 (제128조 제5항, 제6항)
1. 기본 법리 및 개정 취지
일실이익이나 침해자 이익 입증이 곤란하거나, 해당 방식으로 산정된 금액이 미미할 경우, 특허권자는 최소한 특허 실시에 대해 '합리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Reasonable Royalty)'을 손해액으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제128조 제5항). 2019년 개정 전 "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에서 "합리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변경된 것은, 객관적으로 확립된 실시료율이 없는 경우에도 가상의 라이선스 협상(Hypothetical Negotiation)을 통해 보다 유연하고 적정한 실시료를 산정할 수 있도록 한 취지입니다. 이는 미국 판례법상의 Georgia-Pacific 요소들을 참고하여 사안별로 구체적인 요율을 결정하는 접근과 유사합니다.
2. 산정 공식 및 로열티율 결정 요소
손해액(합리적 로열티) = 침해품 매출액 (또는 판매수량) × 합리적 로열티율 (또는 단위당 실시료)
합리적 로열티율/실시료 결정 시 고려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기존에 설정된 실시료(Established Royalty)가 있다면 강력한 기준이 됨
- 해당 기술 분야의 산업적 관행 및 유사 기술 라이선스 사례
- 특허 기술의 중요성, 혁신성, 상업적 가치 및 시장 기여도
- 비침해 대체 기술의 존재 여부 및 기술적/비용적 격차
- 특허의 존속기간, 권리 범위의 강도
- 라이선스 계약의 독점성 여부
- 침해 제품 외 부가적 이익(Convoyed Sales) 발생 가능성
- 가상 협상 시점에서의 당사자들의 사업적 상황 및 기대 이익 등
3. 실무상 쟁점 및 제128조 제6항과의 관계
- 실무 쟁점: '합리적' 로열티율 산정은 본질적으로 가치 평가의 문제입니다. 기술가치평가 전문가의 감정, 동종 업계 라이선스 데이터베이스 분석, 유사 소송 사례 등이 활용됩니다. 특허권자는 기술의 우수성과 시장 기여도를 부각하여 높은 로열티율을 주장하고, 침해자는 대체 기술의 존재, 낮은 기여도 등을 들어 낮은 요율을 주장하게 됩니다.
- 제128조 제6항의 의미: 합리적 로열티 금액이 실제 발생한 손해액(예: 일실이익)보다 적을 경우, 그 차액을 추가로 청구할 수 있음을 명시합니다. 이는 합리적 로열티가 손해배상의 '하한선(Floor)' 역할을 하며, 특허권자가 입증 가능하다면 그 이상의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는 원칙을 확인합니다.
4. 전략적 고려
합리적 로열티는 다른 방식의 입증이 어려울 때의 최후 보루이자, 다른 방식과 병합하여 손해액을 보충하는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특허권자는 가치 평가 근거를 충실히 준비하여 '합리적' 수준을 최대한 높이는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복수 방식의 병합 적용 및 기타 손해 (제128조 제7항 등)
특허법 제128조 제7항은 법원이 손해액 산정 시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 결과를 참작하여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도록 재량을 부여하며, 이는 복수 방식의 병합 적용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 대표적 병합: 일실이익 + 합리적 로열티: 특허권자의 생산능력 범위 내 침해 판매분에 대해서는 일실이익(제2항)을, 생산능력 초과분에 대해서는 합리적 로열티(제5항)를 각각 산정하여 합산하는 방식이 판례상 확립되어 있습니다(대법원 2006다17609 판결 등). 이는 손해의 완전한 전보라는 민사 손해배상의 기본 원칙에 부합합니다.
- 가격 침식 손해 (Price Erosion): 침해자의 저가 판매로 인해 특허권자가 불가피하게 판매 가격을 인하함으로써 발생한 이익 감소분도 이론적으로 손해배상 범위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판례는 이를 통상 손해와 구별되는 특별 손해로 보아 침해자의 예견 가능성(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것)을 추가 요건으로 요구하는 경향이 있어 입증이 까다롭습니다. 인과관계 및 손해액 산정을 위한 정교한 경제 분석이 필요합니다.
- 기타 고려: 손해배상액 산정 시 법원은 공평의 원칙 하에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최종 금액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고의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128조 제8항, 제9항)
1. 제도 개요 및 5배 상향
2019년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침해 행위가 '고의적(Willful)'인 경우, 법원이 제2항 내지 제7항에 따라 인정된 손해액(기본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액을 증액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제128조 제8항, 2024. 2. 개정, 2024. 8. 시행). 이는 손해 전보를 넘어 침해 행위를 예방하고 억지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2. '고의성' 판단 기준
'고의'는 단순히 특허 존재를 인식하는 것을 넘어, 침해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감행하거나, 침해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도 무모하게 침해 행위를 계속하는 경우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 실무상 판단 요소: 특허권자의 경고장 수령 및 그에 대한 대응 태도, 경쟁사 특허 회피 노력(Freedom-to-Operate 분석 등) 여부, 내부 문서(이메일, 회의록 등), 변리사/변호사 등 전문가 의견서 확보 여부 및 그 내용 등이 고의성 판단의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침해자는 유효한 비침해 또는 무효 주장이 있었다는 점, 전문가의 비침해 의견을 신뢰했다는 점 등을 들어 고의성 부인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3. 증액 배수 결정 기준 (제128조 제9항 8가지 요소)
법원은 다음 8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증액 여부 및 배수를 결정합니다. 이는 재량 판단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입니다.
- 침해자의 우월적 지위 여부: 거래상 지위 남용 등 불공정성 판단.
- 고의 또는 손해 발생의 인식 정도: 악의성(Malice)의 정도가 핵심.
- 손해 규모: 기본 손해액 외 실질적 피해 정도 고려.
- 침해자의 경제적 이익: 부당 이득 규모.
- 침해 기간 및 횟수: 침해의 지속성, 반복성.
- 벌금 등 형사처벌: 관련 형사 제재 이력.
- 침해자의 재산 상태: 배상 능력 및 제재 효과 고려.
- 피해 구제 노력: 침해자의 사후 태도(합의 시도, 자발적 시정 등).
4. 실무상 시사점 및 전략
- 특허권자: 소 제기 시부터 고의성을 명확히 주장하고, 관련 증거(경고장 발송 내역, 침해자의 내부 문서, 회피 설계 실패 증거 등)를 적극 수집·제출해야 합니다. 8가지 고려 요소를 유리하게 구성하여 높은 배수 적용의 필요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 침해자: 고의성 부인이 최우선 방어 전략입니다. 비침해/무효 주장의 합리성, 전문가 의견 신뢰, 경고 후의 시정 노력 등을 적극 변론해야 합니다. 만약 고의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면, 8가지 요소 중 유리한 사정(낮은 이익, 피해 구제 노력 등)을 부각하여 배수 감경을 도모해야 합니다.
- 5배 상향의 영향: 증액 상한 확대는 특허 침해 소송의 리스크를 현저히 높였습니다. 이는 침해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게 사전 특허 분석 및 회피 설계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며, 분쟁 발생 시 조기 합의 유인을 높일 수 있습니다. 판례 축적을 통해 5배 배상이 실제 적용되는 구체적인 기준과 요건이 정립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론
특허 침해 손해배상액 산정은 각 방식의 법리적 요건, 입증 책임, 실무상 쟁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선택·조합하며, 강화된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염두에 둔 다각적인 전략 수립을 요구합니다. 특히 고의성 입증 및 징벌적 배상 배수 결정에 관한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