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현대의 기술 발전은 빠르고 복잡하며, 그 기술적 구현 방식 역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발명의 핵심 아이디어를 폭넓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구조적 청구항만으로는 한계가 따를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외 특허법은 점차 발명의 '기능' 자체를 포괄할 수 있는 “기능식 청구항”을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국 특허법에서도 2007년 개정(특허법 제42조 제6항)을 통해 기능식 청구항이 명시적으로 허용되었으며, 그 활용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능식 청구항은 넓은 보호 범위를 제공하는 동시에, 명확성 요건(특허법 제42조 제4항 제2호)이나 명세서 지지 요건(제42조 제4항 제1호) 충족이 까다롭다는 특성이 있어, 이러한 제도와 요건을 면밀히 이해하고 적절히 활용해야 합니다. 본 칼럼에서는 기능식 청구항의 정의와 의의, 한국 특허법상 근거 및 주요 판례, 해외 제도와의 비교, 그리고 작성·활용 전략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능식 청구항의 정의와 의의
1) 기능식 청구항의 개념
기능식 청구항이란 발명의 구성 요소를 구체적인 물리적·구조적 한정으로 기재하기보다는, 해당 구성 요소가 수행하는 “기능”이나 “효과”를 중심으로 정의하는 청구항을 말합니다. 예컨대, “A와 B를 체결하는 볼트 및 너트”라고 작성하는 대신, “A와 B를 체결하기 위한 연결 수단”이라는 표현으로 기능 자체를 청구하는 방식입니다.
2) 기능식 청구항의 필요성
- 다양한 구현방식 포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되 구현 방식이 달라지는 예가 많아졌습니다. 기능으로 청구함으로써, 아직 등장하지 않은 신기술이나 대체 설계를 효과적으로 포괄할 수 있습니다.
- 복잡한 구조 발명에 대한 간명한 표현: 특히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바이오, 화학 등 기술 분야에서, 모든 구조적·물질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기재하기 어려울 때 기능식 청구항이 유용합니다.
기능식 청구항의 예
- 프린터에 있어서,
- 인쇄 데이터를 수신하는 통신 인터페이스부;
- 상기 수신된 인쇄 데이터에 기초하여 인쇄 이미지를 생성하는 이미지 처리부; 및
- 상기 생성된 인쇄 이미지에 따라 용지에 토너를 전사시키는 인쇄부;
- 를 포함하는 프린터.
- 서버에 의한 정보 제공 방법에 있어서,
- 사용자 단말로부터 요청 신호를 수신하는 단계;
- 상기 요청 신호에 포함된 사용자 정보를 분석하는 단계;
- 상기 분석 결과에 기초하여 상기 사용자에게 맞춤화된 추천 정보를 생성하는 단계; 및
- 상기 생성된 추천 정보를 상기 사용자 단말로 전송하는 단계;
- 를 포함하는 정보 제공 방법.
한국 특허법상 기능식 청구항의 법적 근거
한국 특허법은 제42조 제6항을 통해 특허 청구범위에 “[구조, 방법, 기능, 물질 또는 이들의 결합 관계 등을 기재]”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2007년 이전, 기능식 청구항의 허용 여부가 다소 모호했던 상황을 개선하고 기술 혁신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된 규정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특허법 제42조 제4항 제2호(명확성 요건)와 제4항 제1호(명세서 지지 요건)는 기능적 표현을 남용하여 권리 범위를 부당하게 확장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 역할을 합니다.
주요 판례를 통해 본 기능식 청구항 해석
국내 법원은 기능식 청구항을 해석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확립해 왔습니다.
- 청구항 문언이 우선: 기능식 청구항이라 하더라도 우선적으로 청구항 문언 자체를 기준으로 해석합니다.
- 명세서 및 도면의 참조: 청구항 문언이 불명확한 경우, 명세서 및 도면의 기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기술적 의미를 파악합니다.
- 남용 방지: 기능식 표현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거나 모호하여 발명의 범위를 확정하기 어렵다면, 명확성 요건 위반 혹은 지지 부족을 이유로 특허가 무효되거나 거절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대법원 2007후4977 판결은 기능식 청구항에 대해 청구항의 문언을 우선하되, 명세서 및 도면을 통해 용어의 기술적 의미를 보충적으로 해석하되 부당한 확장·축소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또한 대법원 2009후92 판결은 “청구항을 명세서 기재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문언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명백히 불합리한 경우 제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기능식 청구항 활용의 장점과 단점
1) 장점
- 넓은 보호 범위: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다양한 변형·대체안을 일괄적으로 포괄 가능
- 기술 발전에 대한 유연성: 신속히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구현 방식을 포함 가능
- 간결성: 복잡한 발명을 직관적으로 제시하며 핵심 기능을 강조
2) 단점
- 명확성 문제: 기능적 표현이 지나치게 추상적일 경우, 발명의 범위가 불투명해질 수 있음
- 지지 요건 충족 어려움: 청구된 기능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구조·방법·알고리즘이 명세서에 개시되지 않으면 거절 또는 무효 위험이 높아짐
- 권리해석의 불확실성: 침해 및 무효 소송에서 복잡한 해석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큼
기능식 청구항과 명확성 요건
특허법 제42조 제4항 제2호는 청구항이 “명확하고 간결하게” 기재되어야 함을 요구합니다. 기능식 청구항은 본질적으로 구조적 기재가 아니므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명확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 구체적 실시예 개시: 명세서에 청구된 기능을 수행하는 하나 이상의 구체적 구현 방안을 충실히 설명하여 통상의 기술자가 청구항의 범위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합니다.
- 기술적 효과·동작 원리 설명: 발명의 작동 원리와 효과를 명확히 설명함으로써, 기능적 표현에 대해 기술적 이해를 보완합니다.
- 모호한 용어 사용 지양: “적절한 수단”과 같은 극도로 추상적인 표현은 거절될 위험이 크므로, 해당 분야에서 통용되는 명료한 기술 용어를 선택해야 합니다.
한국 특허청(KIPO)의 심사 기준
KIPO는 기능식 청구항 자체를 금지하지 않지만, 특허법 제42조 제6항에 따라 구조·방법·기능·물질 등을 기재하여 발명을 “명확하게 특정”하도록 요구합니다. 특히 아래 사항을 중점적으로 심사합니다.
- 명세서 지지 요건 충족 여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물질, 알고리즘 등이 기재되었는지
- 명확성 요건 충족 여부: 청구된 기능을 통상의 기술자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
소프트웨어 관련 발명의 경우,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모듈” 또는 “데이터 처리 수단” 등 기능식 표현이 빈번히 등장하므로, 알고리즘 수준의 설명이나 상세 플로우차트 등으로 기능을 충분히 뒷받침해야 거절을 피하기 용이합니다.
해외 주요 국가와의 비교
1) 미국
- 법적 근거: 35 U.S.C. § 112(f) (구 § 112(6))
- 특징: “means for ~” 또는 “step for ~”와 같은 표현이 있으면 기능식 청구항으로 추정되며, 명세서에 개시된 구조(또는 그 균등물)로 청구항 범위가 제한됩니다.
2) 유럽(EPO)
- 법적 근거: EPC 제84조(명확성)
- 특징: 명확성·지지 요건을 중시하고, 기능적 특징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으나, 광범위한 권리 청구를 방지하기 위한 실무적 해석 지침이 발달해 있습니다.
3) 일본(JPO)
- 법적 근거: 일본 특허법 제36조
- 특징: 한국과 유사하게 기능·성질·효과로 청구항을 표현하는 것을 허용하나, 충분한 실시예와 명세서 지지를 요구합니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들은 기능식 청구항을 인정하면서도, 명확성과 실시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다양한 해석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례 및 작성 시 주의사항
1) 실제 사례에서의 특징
- 소프트웨어: “데이터를 전송하는 모듈” “특정 함수를 수행하는 수단” 등으로 표현
- 의료 기기: “생체 신호를 감지하는 부품” “이상 상태를 판별하는 수단” 등
- 방법 발명: “특정 데이터를 생성하는 단계” “생성된 데이터를 이용해 연산을 수행하는 단계” 등
2) 작성 전략
- 정확한 기능적 용어 선택: 해당 기술 분야에서 통상 사용되는 용어를 채택해 청구항 문언이 모호해지지 않도록 합니다.
- 명세서에 구체적 실시예 충실 기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하나 이상의 구체적 예시(하드웨어 구조,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등)를 반드시 포함시킵니다.
- 다층적 보호: 최상위 청구항(광범위한 기능식 청구항) 아래, 종속항으로 구체적인 구조적 특징을 단계적으로 제한하여 다양한 범위를 확보합니다.
- 선행 기술 조사: 기능식 청구항은 선행 기술과의 충돌 위험이 클 수 있으므로, 출원 전 꼼꼼한 조사가 필수적입니다.
- 해외 출원 전략 연계: 미국은 § 112(f)의 적용, 유럽·일본의 명확성 심사 등을 고려하여 국가별로 다른 표현·청구항 구성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쟁 및 소송에서의 영향
기능식 청구항은 보호 범위가 넓어 침해 소송에서 유리할 수 있으나, 동시에 무효 심판의 표적이 되기도 쉽습니다.
- 침해 판단 시: 피고 제품·방법이 명세서에 개시된 특정 구조와 다르더라도,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면 침해로 인정될 여지가 높습니다.
- 무효 심판 시: 과도하게 넓은 기능적 표현은 선행 기술과의 간극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할 경우 신규성·진보성 부정 또는 명세서 지지 부족을 근거로 무효될 위험이 큽니다.
해외 사례로 미국의 Amgen Inc. v. Sanofi 사건은 항체의 결합 특성을 광범위하게 기능식으로 청구한 발명이 실시 가능 요건(Enablement)을 충분히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효가 선고된 바 있으며, 이는 생명공학 분야에서의 기능식 청구항 작성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결론 및 제언
기능식 청구항은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서 발명의 아이디어를 폭넓게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 특허법 역시 이를 허용하면서도, 명확성·지지 요건을 통해 그 무분별한 남용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따라서 기능식 청구항을 활용하고자 하는 특허 출원인과 대리인은 다음 사항을 유의해야 합니다.
- 기능식 청구항의 명확성 확보: 기술 분야에서 통용되는 구체적·명료한 표현을 쓰되, 그 기능을 수행하는 실시예를 충분히 제시해 청구항 범위를 합리적으로 확정해야 합니다.
- 구조적 청구항과 병행: 주 청구항으로 기능을 폭넓게 청구하되, 종속항을 통해 구체적 구조나 방법을 단계적으로 한정하면 분쟁 시 다양한 전략적 선택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 해외 출원 고려: 미국, 유럽, 일본 등 각국의 심사 기준과 판례가 상이하므로, 국가별 특허 전략을 구상할 때 기능식 청구항 해석과 제한 요소를 사전에 파악해 두어야 합니다.
- 전문가의 자문: 기능식 청구항은 광범위하지만 섬세한 법률·기술적 판단이 요구되므로, 반드시 경험 풍부한 변리사·변호사와 협력하여 작성하고 출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정책적 제언: KIPO에서 기술 분야별(특히 소프트웨어, 바이오·의료 분야 등) 기능식 청구항 심사 지침을 보다 상세히 마련한다면, 심사의 예측 가능성과 출원인의 안정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파인특허법률사무소는 앞으로도 기능식 청구항에 관한 최신 법·제도 동향 및 판례를 모니터링하여, 고객의 기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맞춤형 전략을 제공해 나가겠습니다.